미국 흑인들, 아프리카로 돌아가다 |
||
|
||
북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에 라이베리아(Liberia)라는 나라가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남한)보다 약간 더 크며 인구는 340만 정도이고 수도는 몬로비아(Monrovia)이다. 나라이름인 라이베리아는 쉽게 연상할 수 있듯이 자유(liberty)의 나라라는 뜻이며, 수도 이름인 몬로비아는 먼로(미국 대통령)의 땅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이 나라의 수도 이름이 되었을까? 의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라이베리아는 미국이 1822년에 개척한 식민지로 1847년 아프리카 최초로 독립국이 되었다. 1822년 식민지 개척당시 미국 대통령이 먼로(James Monroe)여서 그 나라의 수도 이름이 몬로비아가 되었다. 나라 이름과 수도 이름이 암시하듯이 이 나라는 미국 식민주의의 한 표본이다. 미국이 이 나라를 건설한 일련의 과정은 이후 미국이 수많은 신생국들에 개입할 때 판에 박은 듯이 되풀이 된다. 즉, 라이베리아는 미국의 제3세계 정책의 원형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역시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이 독립한 이후 북부의 주들은 버몬트 주를 필두로 잇달아 흑인노예제도를 폐지해 1800년까지는 사실상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그러면 노예제도가 사라진 북부는 흑인들에게 자유의 땅이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자유인이긴 했지만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극소수의 흑인들을 제외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으며 주거와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북부의 많은 주들에서 자유흑인들은 숙련공으로 일할 수 없었으며, 재판에서 백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흑인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고, 그나마 부여된 주에서도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유명무실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짐꾼, 웨이터, 요리사, 하인 같은 잡역뿐이었다. 그런 일들도 흔히 하층 백인들과 경쟁해야만 했다. 북부 백인들은 그들을 해방시켜주었지만 그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백인들의 눈에는 흑인들은 소설가 랠프 엘리슨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
자유흑인들의 처지는 남부에선 더욱 열악하였다. 당시 남부에도 자유흑인들이 상당수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백인들의 경계와 두려움은 대단했다. 그들은 자유롭다는 것만으로도 노예제도에 위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흑인노예들의 탈출을 돕고 그들에게 불순한 생각을 주입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온갖 감시와 폭력과 재노예화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한 마디로 남과 북의 백인들에게는 자유흑인들은 골칫거리였다.
흑인은 완전히 독립된 삶을 살기에는 부족한 열등한 종족이다. 그들은 지적이거나 숙련된 일자리를 가질 능력이 없다. 그들은 불결하고 게으르고 위험하고 야만적이다. 그런 흑인들이 백인들과 함께 사는 것은 백인들의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백인의 정신을 더럽힌다. 그 당시 많은 백인들은 흑인들에 대해 바로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 당시 그런 백인들이 꿈꾼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것은 인디언이 사라지고 그들 곁에 유령처럼 출몰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흑인이 없는 순수 백인의 나라 미국이라는 이상이었다. 아마 그런 미국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흑인들을 모두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흑인이 모두 사라지면 미국은 온전하게 백인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 얼마나 황홀한 아이디어인가? 답은 다시 아프리카에 있었다.
벤자민 콸스의 <미국 흑인사>(조성훈, 이미숙 역)를 보면 그 전말을 조금 알 수 있다.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려는 운동은 독립을 전후한 시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일부 백인들은 독립과 더불어 미국을 순수 백인의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817년 미국식민지건설협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가 결성되면서부터였다. 유명한 공직자들과 목사들이 주동이 된 이 단체는 정부의 협력과 재정적 원조를 바탕으로 서아프리카에 라이베리아라는 식민지를 개척하고는 흑인들을 상대로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운동을 벌였다.
미국에 있어봐야 차별밖에 더 받겠느냐. 우리가 아프리카에 나라를 만들어주겠다. 그러니 아프리카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며 그곳의 미개한 종족들에게 문명을 전파하고 그들에게 기독교를 선교하라. 그것이 그대들의 사명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자비로운 제안인가? 백인이 없는 흑인만의 나라를 만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그러면 이 운동에 대한 흑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래 돌아가자. 여기 있어봐야 백인들에게 온갖 차별과 천대를 받는데 차라리 조상들의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자.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니다. 극소수의 흑인들만 그런 생각에 열광을 했고 보따리를 싸 신천지로 향했다.
절대다수의 흑인들에게 아프리카는 낯선 대륙일 뿐이다. 미국이야 말로 그들에겐 백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조국이었다. 필요할 땐 강제로 끌고 와 착취하고 필요 없으니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백인들의 태도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가려면 백인들이 유럽으로 돌아갈 것이지. 그러므로 백인들의 온갖 설득에도 불구하고 1852년까지 라이베리아로 간 흑인들은 8,000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순수 자유흑인은 2,800 명뿐이고, 3,600 명은 라이베리아에 가는 조건으로 해방된 노예들이었으며, 1,000 명은 노예선에서 석방된 흑인들이었다.
1822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한 척의 배가 88명의 흑인을 태워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이들은 토착민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아프리카에 정착했으며, 그 후 정착민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1847년에 미국을 후견국으로 해 라이베리아 공화국이라는 독립국을 건설했다. 이 미국에서 건너간 흑인들을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American-Librarians)이라고 부른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조셉 젠킨스 로버츠가 라이베리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에서 건너간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라이베리아 인들과 그들의 후손은 절대다수의 토착 흑인들을 열등하고 야만적인 종족으로 멸시하며 극심한 종족 차별 정책을 펼쳤다. 그들은 식민지를 건설할 때부터 원주민들을 탄압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독립과 동시에 정치권력까지 독점했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는 잔인하고 오만한 정복자들이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미국에서 온갖 인종적인 멸시와 착취를 당하던 그들이 정작 아프리카에 와서는 다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원주민들을 야만시하고 착취한 것이다.
미국계 라이베리아 인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 미국식 교육을 받게 하고, 미국식 제도를 이식하고, 미국의 원조에 의존해 권력을 유지했다. 미국은 그곳에 군대를 상주시켜 그들을 도왔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에는 그곳을 아프리카에서 쏘련에 대항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었다. 미국 정부는 그들이 부정과 부패를 일삼고 토착민들을 착취하고 학살하더라도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상 묵인하였으며, 필요할 때는 미국에 정치적 피난처를 제공해주었다. 한 마디로 라이베리아의 모든 정권은 미국의 이익을 충실히 지켜주는 식민정권이었다.
라이베리아는 독립한 후 미국계 라이베리아 인들로 구성된 트루휘그당(True Whig Party)의 일당 독재를 130년 이상 유지했다. 오직 미국계 라이베리아 인만이 대통령이 되고 권력과 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80년에 비 미국계 라이베리아인 장교 도우(Doe)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라이베리아를 장악했지만 그 역시 잔인한 독재정치를 함으로써 그 이후 라이베리아는 수십 년에 걸친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종족간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비극의 땅이 되었다. 그나마 2005년 유엔 감시하의 선거에서 여성인 엘렌 존슨-시리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라이베리아는 강대국의 탐욕이 제3세계를 얼마나 철저하게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 재미로 쓰는 미국사 중에서 |
' 1 미국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신분도용범죄 방지 요령···크레딧 리포트 등 정기 점검, 소셜·생일 정보 노출 안되게 (0) | 2014.02.19 |
---|---|
미국, 하와이를 탈취하다 (0) | 2014.02.19 |
그 많던 인디언은 다 어디로 갔을까? (0) | 2014.02.19 |
미국 최고의 직업은 간호사…이어 소프트웨어 기술사와 약사 순 (0) | 2014.02.19 |
이사갈 동네가 안전한 동네인지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 (0) | 2014.02.15 |